제1화
「빚쟁이 소녀, 구앙구앙」
아쉬라 제국, 남부 변경의 어느 도시.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이 도시는, 제국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가가 나온다. 구앙구앙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누나, 나 배고파…"
동생 누앙누앙의 목소리에 구앙구앙은 빈 쌀자루를 내려다보았다. 어제까지 반 줌 정도 남아 있던 쌀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나가 어떻게든 찾아볼게."
구앙구앙은 낡은 천 조각을 허리에 두르고 판잣집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따가웠다. 갈색 피부가 반짝이며 땀을 흘렸다.
우리 집은 원래 세 식구였다.
아빠, 나, 동생.
부족했지만 그럭저럭 행복했다. 아빠는 부두에서 짐을 나르는 일을 했고, 퇴근길에 가끔 과일을 사다 주셨다. 동생은 그 과일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게 언제적 일이었더라.
피라미 이민자들이 도시에 쏟아지기 시작한 건 한 5년 전쯤이었다.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인간보다 적은 임금에도 불평 없이 일하는 피라미들. 고용주들은 당연히 그들을 선택했다.
아빠는 직장을 잃었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올 테니까, 동생하고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그 말을 남기고 아빠는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3년이다.
"세금 걷으러 왔습니다."
문 앞에 제국 징수관이 서 있었다. 기름기 번들거리는 얼굴에 배가 툭 튀어나온 중년 남자. 손에는 장부와 붓을 들고 있었다.
구앙구앙은 한숨을 삼켰다.
"저 돈 없는데요. 저번 주에도 납부했잖아요."
"뭐? 장난해?"
징수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바퀴벌레 같으니. 세금 덕분에 너희가 여기서 두 발 뻗고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거야. 몇 번 더 안 내면 너, 노예로 팔려가는 거 알지?"
세금은 분명 한 달에 한 번 걷는 게 맞을 텐데, 왜 매주 다른 징수관이 찾아오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부패.
징수관들이 각자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제멋대로 세금을 걷는 것이다. 위에서 눈 감아주는 건 당연하고. 힘들게 번 돈은 그렇게 사라졌다.
내지 못한 세금은 상인조합 은행에서 자동으로 대출이 실행된다. 그 빚에는 이자가 붙는다. 복리로.
갚지 못하면?
연행되어 감옥에 갇히고, 빚 변제를 위해 노예로 팔려간다.
지금 우리가 바로 딱 그 상황.
"으으… 어쩐다…"

방으로 돌아온 구앙구앙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창문 너머로 동생 누앙누앙이 마당에서 나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허공을 베는 소년.
"누나, 이번에 내가 무사 양성 학교에 꼭 붙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누앙누앙이 외쳤다. 땀에 젖은 얼굴이 햇빛에 반짝였다.
무사 양성 학교.
제국이 운영하는 무사 경찰 양성 기관이다. 들어가면 학비는 물론 숙식까지 해결되고,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된다. 빈민가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
"그래, 누앙누앙. 너만 믿고 있을게."
구앙구앙은 웃어 보였다. 웃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동생이 시험을 칠 때까지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 두란 아저씨의 바무사 경찰들도 순찰을 꺼리는 골목 끝자락.
낡은 간판에는 '방랑자의 쉼터'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곳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두란의 바'였다.
"안녕하세요, 두란 아저씨!"
구앙구앙이 들어서자 카운터 뒤의 거구가 고개를 들었다. 배가 산처럼 불룩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자. 아버지의 고향 친구라고 했다.
"오, 우리 예쁜이 왔구나!"
두란이 환하게 웃었다. 부스러기가 잔뜩 묻은 손으로 테이블을 쓱쓱 닦으면서.
"혹시 새로 생긴 일거리는 없나요?"
"음… 지금은 딱히 없구나."
두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즘 제국에서 국경지대 영토 수복한다고 일들이 다 그쪽으로 집중돼서 말이지. 도시에 남는 건 찌꺼기뿐이야."
"아… 그렇군요…"
구앙구앙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래도 일단 뭐 좀 먹고 가거라. 마침 가지 덮밥 남은 게 있어."
두란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구앙구앙은 바 구석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돈이 급한데 일이 없다니.
어쩌지.
그때,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아무튼 그곳에서 군인들 칼 몇 자루만 챙겨오면, 인생 펴는 거지."
"헤에~ 정말요?"
술 취한 낭인들이었다. 칼집에 먼지가 잔뜩 앉은 걸 보니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일을 못 한 모양이다.
"북쪽 국경지대 말이야. 제국군하고 태양교 놈들이 맨날 치고받고 싸우거든."
"아니, 거기 갔다가 양쪽 군대한테 두들겨 맞는 거 아니요?"
"밤에 슬쩍 가서 시체만 털면 되지. 죽은 놈들한테 칼이 무슨 소용이야?"
구앙구앙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근데 그쪽에 식인종이 나온다며?"
"그래서 위험수당이 포함된 거 아니겠어. 기간은 한 달, 급여는 만 냥. 살아서 돌아오면 인생이 바뀌는 거지."
만 냥.
빚을 청산하고도 남는 돈이다.
"아무튼 내일 아침에 같이 한탕 해볼 사람은 가보라고. 바 앞에서 모인대."
구앙구앙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벽에 붙은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이 나붙어 있었다.
『시체털이 원정대 모집. 경험 불문. 급여 1만 냥.』
그 아래로 여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구앙구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게시판 앞에 서서, 연필을 집어 들었다.
구앙구앙.
거칠게 이름을 적어 넣었다.
"잘 생각했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두란 아저씨가 가지 덮밥을 들고 서 있었다.
"조심해라. 그쪽은… 진짜 위험한 곳이야."
"네."
구앙구앙은 덮밥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여기 있어도 노예로 팔려가는 거잖아.
그럴 바에는.
출발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떴다.
누앙누앙은 아직 자고 있었다. 구앙구앙은 동생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따뜻했다. 잠꼬대를 하며 뒤척이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잘 있어."
속삭이고 문을 나섰다.
바 앞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낭인, 실직한 노동자, 빚에 쫓기는 도박꾼…. 하나같이 삶에 쫓기는 얼굴들이었다.
"모두 모였나?"
한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흰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등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지고 있었다. 굽은 등에도 불구하고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나는 켄. 이번 원정대를 이끌게 됐다."
켄 할아버지가 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북쪽 국경지대까지 이틀 거리. 그곳에서 제국군과 태양교 시체를 털어 값진 물건을 챙긴다. 목표량을 채우면 돌아온다. 위험수당 포함 1인당 1만 냥. 질문?"
아무도 없었다.
"좋아, 출발."
원정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막은 고요했다. 새벽의 선선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가 떠오르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짓눌렀다.
"우욱, 냄새…"
누군가 코를 찡그렸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구앙구앙은 슬쩍 자기 몸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 날씨에 땀이 안 날 수가 없지. 확실히 좀 쉰내가 났다.
"너, 그렇게 땀 흘리면 탈진해버릴 걸?"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눈동자는 붉었다. 마치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
"제가 사막을 이 날씨에는 안 다녀봐서요…"
"일루 와봐."
여자가 갑자기 구앙구앙의 팔을 껴안았다.
"힉?!"
차갑다.
아니, 시원하다.
여자의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얼음을 끌어안은 것 같았다.
"하아…♡ 시원해…"
"나는 사막에서도 피부가 차가운 편이거든."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러죠?"
"…"
대답이 없었다.
무시당한 건가?
그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네?"
"너를 보고 있으면 자꾸 내 잃어버린 여동생이 떠올라."
구앙구앙은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렸을 적, 그 끔찍했던 날 말이야. 마을에 식인종들이 쳐들어와서 불길이 번지고, 사람들의 비명이 하늘을 찔렀지. 난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고, 결국 가족이랑 흩어져버렸어."
여자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마치 날씨 얘기를 하듯.
"그때 식인종한테 한번 잡혔었는데… 아무튼. 그날 이후로 난 혼자가 됐고, 다시는 평범한 하루를 살 수 없게 되었어. 그래서 칼을 휘두르고, 쇠뇌를 쏘고, 밤마다 싸움 연습을 하면서 살아왔지."
무거운 이야기다.
그런데.
"근데 있잖아, 그렇게 진지하게 얘기하다 보니까 갑자기 어제 저녁 생각난다?"
…응?
"국에 밥 말아먹었는데, 국물이 좀 짜서 목이 바짝바짝 타더라고. 그래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순간 '아, 이거 사막 한가운데 떨어지면 물이 얼마나 소중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어."
뭐야 이 사람.
"아, 근데 사막 얘기하니까 또 그때 내가 했던 생존 훈련이 떠오르네. 뱀 잡아서 구워 먹으려다 도망쳐 버렸는데, 그 뒤로는 뱀만 봐도 소름이 돋아. 사실 난 강한 척하지만 은근히 겁도 많아. 아 근데 그 뱀 구워 먹으니까 닭고기 맛 나고 맛있긴 하더라구~"
멈추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서, 여동생 얘기를 하자면… 아직도 찾지 못했어. 식인종 사냥꾼 무리에 들어가서 수많은 마을을 뒤지고, 폐허까지 뒤져 봤는데 단서 하나 없었지. 그래서 늘 고민이야. 그 녀석들은 과연 원래부터 그런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변한 걸까…"
구앙구앙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아 맞다. 내가 말이 좀 많지? 원래 이렇게 말 많은 성격은 아닌데, 네 앞에서 자꾸만 말이 길어지네. 어릴 때 여동생 앞에서도 이랬거든. 아 근데 빵 얘기하니까 또 빵이 생각난다. 난 바삭바삭하게 말린 멧돼지 고기와 선인장 피클이 안에 들어간 빵이 제일 좋아. 여동생도 빵 좋아했지. 둘이서 몰래 빵 훔쳐 먹다가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도 있고…"
이 사람 진짜 멈출 생각이 없구나.
"아 근데, 너 이름은 뭐니?"
드디어 끝났다.
"제 이름은 구앙구앙이라고 해요."
"구앙구앙? 광광? 앞으로 팡팡이라고 부를게."
"대체 어떻게 그렇게 바뀌는 거죠? 그건 그렇고, 저도 당신 이름을 알고 싶어요."
여자가 씩 웃었다.
"내 이름은… 토끼야. 광광아 잘 부탁해."
토끼?
사람 이름이 토끼?
"네… 잘 부탁드려요, 토끼씨."
구앙구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사막의 밤은 낮과는 정반대였다. 작열하던 열기가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이다."
켄 할아버지가 선언했다. 원정대원들이 각자 짐을 풀고 침낭을 꺼냈다.
구앙구앙도 빌려온 침낭을 깔고 누웠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도시에서는 본 적 없는 광경.
'내일이면 국경지대에 도착한다.'
긴장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
"구앙구앙."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토끼씨였다.
"뭐예요?"
"나 추워."
그러더니 갑자기 구앙구앙 옆으로 파고들었다.
"헉?! 차가워!"
토끼씨의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낮에는 시원하더니 밤에는 그게 그대로 추위가 됐다.
"너는 따뜻하네. 좋다."
토끼씨가 구앙구앙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
"자, 잠깐—"
"굿나잇."
"…"
토끼씨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낮에 그렇게 말이 많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잠들다니.
구앙구앙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근새근…"
그래도 조용히 자는 모습은 꽤 귀엽네.
입만 다물고 있다면 예쁜 사람인데.
구앙구앙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전쟁터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혼자가 아니라는 게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