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국경지대의 허-접 식인종과 전쟁터」
국경지대가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 바람에 뭔가 다른 냄새가 섞여 들었다. 철과 연기, 그리고 썩어가는 무언가의 냄새.
죽음의 냄새였다.
"저기요, 토끼씨."
"응?"
"저기 뭔가 이상한 거 안 보여요?"
구앙구앙이 먼 곳을 가리켰다. 지평선 근처에 초록빛 뭔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언뜻 보면 대나무숲 같기도 하고, 신기루 같기도 했다.
근데 그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쪽으로.
"아."
토끼씨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말을 좀 줄여야 하려나."
"네? 저게 뭔데요?"
"식인종."
구앙구앙의 얼굴이 굳었다.
"저게… 전부요?"
"응. 저 정도면 한 서른 마리? 사십 마리?"
토끼씨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치 '오늘 날씨 좋네'라고 말하듯.
"서, 서른 마리?!"
"걱정 마. 저건 허접한 놈들이야."
토끼씨가 검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봐. 초록색 문신이지? 식인종도 종류가 있거든. 빨간 문신은 전투형, 강한 놈들이야.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고 일부러 눈에 띄는 색을 칠하는 거지. 근데 저 초록 문신은 위장형이야. 사냥할 때 풀숲에 숨으려고 초록색을 칠한 건데…"
토끼씨가 피식 웃었다.
"여기 사막이잖아. 풀이 어딨어. 멍청한 놈들이지."
"그래도 서른 마리나…"
"그래서 말인데."
토끼씨가 갑자기 구앙구앙의 어깨를 잡았다.
"구앙구앙이 상대하기 딱 좋은 것 같아."
"…네?"
찰그락— 찰그락— 찰그락—
식인종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작았다. 성인 남자의 허리 정도밖에 안 되는 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 손에는 녹슨 칼이나 뾰족한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
굶주린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으앙~ 나 따라오지 말라고~!!"
구앙구앙은 달리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구앙구앙! 맞서 싸워야지!"
토끼씨도 옆에서 나란히 달리며 외쳤다.
"저한테 한 30마리 정도가 따라오는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이 상대해본 적 없다고요!"
"그 정도면 이길 수 있어! 칼 한 번에 휘두르면 한 명씩 쓰러뜨린다 치면, 30명이면 10분 만에 끝나는데…"
"무슨 계산이에요 그게!"
"내가 한창 식인종 사냥꾼으로 활동할 때는—"
철푸덕—!
갑자기 토끼씨가 넘어졌다.
"앗?!"
구앙구앙이 급히 뒤를 돌아봤다. 토끼씨가 모래밭에 엎어져 있었다. 식인종들이 순식간에 그녀를 둘러쌌다.
한 식인종이 토끼씨를 어깨에 들쳐맸다.
"우헤엥— 구앙구앙, 도와줘~"
…어?
저 목소리.
너무 태연한데?
구앙구앙은 순간 깨달았다. 일부러 넘어진 거다. 자기를 시험하려고.
'이 사람 진짜…!'
하지만 화낼 틈이 없었다. 식인종들이 구앙구앙을 에워싸고 있었다.
찰그락. 찰그락.
작은 눈동자들이 빛났다. 침을 질질 흘리는 입. 날카로운 이빨.
도망치면 따라잡힌다.
뒤에서 치인다.
싸워야 한다.
구앙구앙은 칼을 뽑았다.
"키에엑—!"
첫 번째 식인종이 달려들었다. 몽둥이를 머리 위로 들고 내리치려는 자세.
구앙구앙은 이를 악물었다.
냉정하게.
상대는 작다. 팔이 짧다. 내 칼이 먼저 닿는다.
"죽어라앗—!"
푹—!
칼이 식인종의 가슴을 꿰뚫었다.
"키에…엑…"
쓰러졌다.
첫 번째.
서걱—!
확인 사살. 우측 대각선으로 베어내렸다. 완전히 쓰러졌다.
"키에엑—!"
"키에엑—!"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으…으앗! 동시에 오지 말란 말이다!!"
턱—! 서걱—!
한 놈의 공격을 칼로 막고, 그대로 힘을 실어 밀어붙였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순간 베어버렸다.
휙—
남은 한 놈이 옆에서 찔러왔다. 몸을 틀어 피하고—
푹—!
머리를 찔렀다.
두 번째, 세 번째.
"올 테면 와보시지!!"
구앙구앙이 소리쳤다. 피가 끓어올랐다. 두려움보다 흥분이 앞섰다.
세 마리를 빠르게 베어버리자, 식인종들이 주춤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쳤다.
약하다.
진짜로 약하다.
발딱이가 더 무서웠어.
"구앙구앙~ 나 구해줘야지~!"
토끼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식인종 어깨에 들쳐메인 채로.
"맞다! 토끼씨!"
구앙구앙은 토끼씨를 향해 달렸다. 길을 막는 식인종들을 하나하나 베어나갔다.
서걱—! 푹—! 푹—! 서걱—!
어느새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먼저 칼이 나갔다. 어깨를 베고, 목을 찌르고, 다리를 잘랐다.
"키에…"
"키엑…"
식인종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
토끼씨를 들쳐멘 놈이었다.
"…크아아악!!"
구앙구앙의 칼이 그 머리를 갈랐다.
토끼씨가 모래 위로 떨어졌다. 우아하게 한 바퀴 돌며 착지.
"우효~ 구앙구앙 나이스!"
"헥… 헥…"
구앙구앙은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과 피로 범벅이었다. 피는 전부 식인종 것이었지만.
"토끼씨…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서…"
"에이, 그래도 훈련이 됐잖아?"
토끼씨가 씩 웃으며 구앙구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30마리. 10분 안에. 훌륭해."
"…하아."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냈다.
서른 마리를 혼자 힘으로 쓰러뜨렸다.
구앙구앙은 피 묻은 칼을 내려다봤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국경지대에 도착했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여러 사암 언덕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 안에 무너진 건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때는 계획도시였다고 했다. 제국이 야심 차게 건설한 신도시.
지금은 폐허였다.
"생각보다 시체가 안 보이네요."
구앙구앙이 중얼거렸다. 매일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고 들었는데, 시체가 산을 이룰 줄 알았다.
"다 식인종들이 들고 가서 그래."
토끼씨가 대답했다.
"전쟁 덕분에 식인종들이 번성하게 된 거지. 공짜 먹이가 매일 쏟아지니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기 봐."
켄 할아버지가 언덕 너머를 가리켰다.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방향에서.
"오른쪽이 제국군, 왼쪽이 태양교군이다. 곧 부딪힐 거야."
원정대는 언덕 위에 숨어 전투를 지켜봤다.
팅—! 캉—!
우라—!!
으악—!
검과 검이 부딪히고, 함성이 울리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철갑옷을 입은 제국군이 밀어붙였다. 조직적이고 훈련된 움직임. 하지만 태양교 쪽에서 지원군이 쏟아졌다.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
한 명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제국 무사 서넛이 쓰러졌다.
"저게 태양교 성기사야."
토끼씨가 설명했다.
"갑옷도 두껍고, 힘도 세고, 광신도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상대하기 까다롭지."
"그럼 우리가 주워야 할 건…"
"제국 무사들 칼이야. 무겁지도 않은데 값이 꽤 나가거든."
하지만 전투는 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후속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태양교군이 후퇴한 것이다.
"젠장."
용병 아저씨가 혀를 찼다.
"제국군이 이기면 시체 수습을 철저히 하잖아."
"밤까지 기다려야겠군."
켄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두워지면 수습하지 못한 시체들을 털러 가자."
오늘 저녁 반찬은 튀긴 가지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토끼씨가 좀 아쉬워하는 듯했다.
"고기반찬이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훌륭한 식사로군."
갑자기 토끼씨가 먹던 쌀밥과 나를 교차로 여러 번 흘낏흘낏 쳐다 봤다.
"잠시만.. 짭짤한 구앙구앙, 나한테 잠시 와봐."
"우음..? 꿀꺽. 저요?"
그릇에 얼마 안 남은 가지 튀김 덮밥을 빠르게 비우고, 토끼씨한테 갔다.
"팔 잠시 들어볼래?"
"네!"
그 순간 토끼씨가 내 겨드랑이로 밥을 빚어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ㅏ아아아아~!!! 뭐 하시는거예요 토끼씨!!!"
"헤, 헤헷, 밥맛이 별로 없고 반찬도 싱거워서, 짭짤한 구앙구앙을 반찬 삼아서 먹으려고."
현란한 토끼씨의 손놀림으로 주먹밥은 빠르게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토끼씨의 차가운 손이 내 민감한 살에 닿아 움찔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이거 소금 간이 따로 필요 없구만. 맛있다 맛있어!"
토끼씨는 굉장히 행복해하는 얼굴로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켄 할배가 다가오더니
"혹시- 내게도 만들어 줄 수 있는가?"
"그, 그만해주세요~!"
달이 떴다.
원정대는 조용히 전장으로 내려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숨을 참고.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 태양교 병사들이었다. 하얀 옷에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자, 빠르게 털고 빠지자."
켄 할아버지가 지시했다.
구앙구앙은 가장 가까운 시체에게 다가갔다. 젊은 남자였다. 눈이 반쯤 열려 있었다.
…죽었구나.
손이 떨렸다.
"머뭇거리지 마."
토끼씨가 옆에서 말했다.
"죽은 사람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 사람도 살아있을 때는 누군가를 죽였을 테니까."
"…네."
구앙구앙은 시체의 허리춤을 뒤졌다. 칼집에 꽂힌 단검을 뽑아냈다. 꽤 좋은 품질이었다.
"이거 괜찮네."
"더 있을 거야. 이쪽으로."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체를 털었다. 칼, 동전, 장신구… 생각보다 많은 것을 수확했다.
"이제 충분하지 않아?"
누군가 물었다.
"한 번 더 하자."
켄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차피 위험한 건 똑같아. 한 번 온 김에 최대한 많이 챙기는 게 이득이야."
원정대원들이 동의했다. 구앙구앙도 따랐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전투가 시작됐을 때, 원정대는 전장 한복판에 있었다.
"젠장, 늦었어!"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양쪽 군대가 부딪히고 있었다. 도망칠 길이 없었다.
"제국군 갑옷을 입어!"
켄 할아버지가 외쳤다.
"섞여 들어가면 못 알아볼 거야!"
급하게 시체에서 갑옷을 벗겨 입었다. 투구도 썼다. 서로의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저기, 왜 제국군 갑옷이에요?"
구앙구앙이 물었다.
켄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태양교 놈들은 여자를 싸움에 절대 안 내보내. 교리 때문에 그래. 남자는 태양을 봐도 되지만, 여자는 태양을 보면 안 된다나 뭐라나. 근데 너랑 토끼는 여자잖아? 태양교 옷 입고 있다가 들키면 바로 죽어."
"…그렇군요."
구앙구앙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헬멧을 눌러썼다.
그리고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캉—! 챙—!
사방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구앙구앙은 제국군 사이에 섞여 달렸다. 눈앞에 태양교 병사가 나타나면 피하고, 제국군이 보이면 따라갔다.
이건 내 싸움이 아니야.
살아남기만 하면 돼.
그때였다.
수—웅!
옆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칼을 들었다. 칼날이 아닌 팔 보호대에 부딪혔다.
캉—!
"우앗! 너 뭐야!"
구앙구앙이 소리쳤다.
상대는 태양교 병사였다. 아니, 병사라기에는 너무 젊었다. 열일곱, 열여덟 정도? 갈색 머리카락에 동그란 눈. 얼굴에는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태양신 만세! 악마는 죽어라!!"
소년이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현란한 움직임. 태양교 특유의 검술이었다.
구앙구앙은 방어에 급급했다. 칼로 막고, 피하고, 물러서고.
"쿨럭! 쿨럭! 그… 그만 좀 때려!"
말하는 순간 검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고개를 틀어 피했다. 간발의 차이.
식은땀이 흘렀다.
이 녀석, 강하다.
식인종들하고는 차원이 달라.
구앙구앙은 이를 악물었다. 공격이 들어올 때 타이밍을 잡아서—
상대의 팔을 잡았다.
겨드랑이에 끼우고 비틀었다.
투둑—
"크악!"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팔이 꺾인 것이다.
"주, 죽어라 이 악마야!!"
하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꺾인 팔을 무시하고 다른 손으로 단검을 뽑았다.
그 칼이 구앙구앙의 허리를 노렸다.
구앙구앙은 소년의 다리를 걷어찼다. 소년이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그 위에 올라탔다.
주먹을 내리꽂았다.
퍽! 퍽! 퍽! 퍽!
"크으… 아직, 이르다… 악마야…!"
소년이 저항했다. 두 손으로 구앙구앙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구앙구앙은 소년의 두 팔을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손으로 투구를 벗기려 했다.
투구가 벗겨졌다.
갈색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소년의 눈이 커졌다.
"엇… 여… 여자?"
"…"
구앙구앙도 멈칫했다.
상대도 얼굴을 보았다. 땀에 젖은 갈색 피부. 검은 머리카락. 동그란 눈.
"왜, 왜 여자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소년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와 혼란이 뒤섞인 표정.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퍽—!
구앙구앙의 주먹이 소년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소년의 눈이 뒤집혔다. 의식을 잃었다.
"헉… 헉…"
구앙구앙은 쓰러진 소년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죽이지는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손이 멈췄다.
"구앙구앙!"
토끼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구앙구앙은 쓰러진 소년을 한 번 돌아보고, 토끼씨에게로 달렸다.
전장을 벗어났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원정대는 무사했다. 적어도 대부분은.
"하아… 살았다…"
구앙구앙은 모래 위에 주저앉았다.
품속에는 챙겨온 칼과 동전들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수고했어."
토끼씨가 옆에 앉았다.
"오늘도 살아남았네."
"…네."
살아남았다.
또.
이상하게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