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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살아남았다 — 그게 문제였다 cover

ep1. 살아남았다 — 그게 문제였다

from 로빈 크루소 이야기

Published: March 6, 2026

나는 살아남았다.

그게 문제였다.

누군가는 살아남는 걸 축복이라고 부르겠지. 하지만 내가 배운 건 정반대였다. 살아남는다는 건, 단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쁨도 안도도 없이, 그저 다음 선택이, 다음 공포가, 다음 책임이 이어진다는 뜻.

…물론, 그날 아침의 나는 그런 걸 몰랐다.

나는 그저 바다가 너무 파랗고, 하늘이 너무 넓어서, 내 인생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로빈, 가족들한테 손 흔들 거면 제대로 흔들어. 어중간하면 더 미련 남아."

등 뒤에서 툭 던지듯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안다. 내가 발을 디딘 갑판 위에서,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엘리너 그레이.

갈색 머리를 낮게 묶은 그녀는 선원용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잔머리조차 계산된 것처럼 차분해 보였지만, 그 눈만큼은 늘 바다 쪽을 보고 있었다. 바다를 사랑해서가 아니라—바다가 사람을 어떻게 삼키는지 너무 잘 알아서.

나는 팔을 더 높이 들었다. 손바닥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저, 제대로 흔들고 있어요!"

"그래. 그럼 됐어."

엘리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뭔가 단단한 것이 함께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쇠로 만든 공기 같은 것.

나는 다시 난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항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물결 위로 솟은 창고 지붕들, 부두에 엉켜 있는 밧줄과 나무통, 갈매기 떼가 빙글빙글 도는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아주 작게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떠나오는 곳.

요크.

정확히 말하면, 요크의 집. '중간의 삶'을 가장 안정적인 축복이라 믿던 아버지의 집. "너는 왜 굳이 위험으로 걸어 들어가느냐"고 묻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숨이 막힐 만큼 따뜻해서—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집의 모서리에 딱 맞게 잘린 천 조각처럼. 처음엔 아프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도망쳤다.

도망친 걸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이것을 '모험'이라고 불렀다. 내게는 그 편이 더 그럴듯했다. 모험에는 이유가 필요 없으니까. 도망에는 이유를 대야 하니까.

"멀미는?"

엘리너가 밧줄을 점검하며 물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않았다. 마치 '멀미'는 날씨처럼 당연히 확인해야 하는 항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웃었다. 씩씩하게, 아주 씩씩하게.

"안 해요."

"거짓말."

"…조금."

"조금이면 괜찮아. 토는 하지 마. 물 아까워."

"네?!"

"농담 아니야."

엘리너는 진심이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이상하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선량한 위로보다, 차가운 현실이 오히려 나를 살게 하는 순간이 있다. 엘리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허리에 맨 가죽 가방을 꼭 쥐었다. 그 안에는 내가 가진 전부가 들어 있었다. 바늘과 실, 작은 노트, 연필, 빵 조각, 그리고—내가 "로빈 크루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날부터 늘 함께한 작은 나침반.

원래 내 이름은 길고, 얌전하고, 집 안의 식탁처럼 안전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그런 이름이 너무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바다에서는 이름이 짧아야 한다. 빨리 불리고, 빨리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로빈이 되었다.

처음 그 이름을 쓴 건 항구의 취업 공고 앞이었다. 손으로 쓴 거친 글씨로 '경험 있는 선원 구함'이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그 아래 내 이름을 썼다. 로빈 크루소.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꾹꾹 눌러서.

그런데 담당자는 내 얼굴을 보고 멈췄다.

"여자잖아요."

"네."

"배에는 여자를 안 태워요."

"왜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유는 이유가 아니라 벽이었다. 내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종류의 벽.

나는 그 공고판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발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몰라서.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경험이 있어?"

돌아보니 엘리너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짧게 묶은 머리, 바다 냄새가 배어 있는 조끼, 그리고 뭔가를 오래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눈.

"없어요."

"솔직하네."

"거짓말하면 더 금방 들킬 것 같아서요."

엘리너는 잠깐 나를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딱 한 번. 품평하는 눈이 아니라 계산하는 눈이었다.

"손 봐봐."

나는 손을 내밀었다. 굳은살이 없었다. 항구 노동자의 손이 아니라, 바느질과 글씨만 쓴 손이었다.

"배운 거 있어?"

"재봉이요. 그리고 지도 읽는 거 조금."

"지도?"

"아버지한테서요. 취미처럼 가르쳐줬는데, 진지하게 배웠어요."

엘리너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눈이 처음으로 내 얼굴을 제대로 봤다.

"여자잖아." 내가 먼저 말했다. 어차피 나올 말이니까.

엘리너는 입을 열었다. 나는 또 벽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익숙한 벽. 내가 한 번도 뚫어본 적 없는 벽.

"그래서?"

두 글자였다.

'그래서'와 물음표.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 두 글자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준비한 말이 있었는데, 그 말들은 전부 반박하기 위한 말이었다. 벽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었다. 그런데 엘리너는 벽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냥… 물었다. 진짜로 궁금해서.

그래서?

그 질문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했다.

"…그래서가 없어요."

"그럼 됐어. 내일 새벽 다섯 시. 3번 선착장."

그게 시작이었다.

해가 높았다. 돛은 바람을 품었고, 배는 바다를 가르며 미끄러졌다. 갑판 위의 나무 판자는 따뜻했고, 바람은 염분과 햇빛 냄새가 섞인 향을 실어왔다. 갈매기들이 "끼약—" 하고 울며 뒤따랐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속으로 속삭였다.

(해냈다.)

단지 집을 나온 게 아니라, '나'를 해낸 기분이었다. 여자가 배에 타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사람들의 눈이 얼마나 쉽게 칼이 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해내고 싶었다. 더 멀리 가고 싶었다.

다른 선원들은 처음엔 내 쪽을 잘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다는 건 무시가 아니라 경계였다. 모르는 것을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방식.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경계는 적어도 솔직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밧줄을 잡으라면 잡고, 물통을 옮기라면 옮겼다. 손이 쓸려 피가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이면 구석에 앉아 작은 노트에 배의 구조를 그렸다. 돛의 이름, 밧줄의 방향, 풍향에 따라 달라지는 갑판의 움직임.

엘리너가 지나가다 한번 그 노트를 봤다.

"틀렸어."

"어디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한 부분을 짚었다. 나는 고쳐 그렸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랬다. 엘리너는 길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틀렸으면 틀렸다고, 맞으면 말 없이 지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게 쌓이면 배움이 됐다. 나는 그런 방식이 좋았다. 설명을 들을 때보다 고칠 때 더 기억에 남으니까.

"로빈."

엘리너가 다시 불렀다. 이번엔 조금 낮게, 조금 가깝게.

"네."

"겁나?"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겁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겁이 난다고 하면, 지금의 나 자신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솔직하면서도 가장 씩씩한 말을 골랐다.

"겁나긴 해요. 그런데… 더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엘리너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지도, "잘했어" 하고 칭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밧줄의 매듭을 한 번 더 눌러 확인하더니 말했다.

"좋아. 그럼 대서양 끝까지 가보자고."

끝까지.

나는 그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그때의 나는 그저, 끝까지 가면 끝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모험 소설처럼. 동화처럼.

바다는 그런 친절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너, 바다 좋아해?"

엘리너가 이번엔 정말 드물게, 내 쪽을 똑바로 봤다. 갈색 눈동자가 갑판의 햇빛을 받아 얕게 반짝였다.

"…좋아하고 싶어요."

엘리너는 그 말에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칼날이 잠깐 옆으로 비켜난 느낌.

"그럼 기억해. 바다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그 말이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보호막처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바람이 바뀌었다.

정확히는—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아까까지 내 뺨을 스치던 바람은 장난처럼 가벼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람이 손이 아니라 손톱처럼 느껴졌다. 돛이 '탁' 하고 불쾌하게 울었다. 나무가 낮게 삐걱거렸다. 배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선원들 중 누군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구름이…"

나는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 한쪽 끝에, 잉크처럼 짙은 선이 보였다. 아주 얇고 멀었다. 그런데 그 얇은 선이 내 눈에는 이상하게 커다랗게 느껴졌다. 마치… 내 쪽으로 번져오는 얼룩.

엘리너가 즉시 움직였다. 그녀의 몸이 '아, 이건 익숙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갑판 정리. 가방 묶어. 밧줄 더 조여."

그녀는 명령을 길게 하지 않았다. 길게 할 시간이 없다는 것처럼.

나는 허리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괜찮겠죠?" 나도 모르게 물었다.

엘리너는 대답 대신 내 가방 끈을 한 번 더 당겨 고정해주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괜찮게 만들어."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건… 생존의 규칙이었다.

처음엔 비가 오지 않았다.

구름이 가까워지자, 오히려 바람이 잠깐 멈춘 듯 고요해졌다. 바다는 이상하리만치 평평해졌고, 수평선이 얇게 떨렸다. 그 고요함이 나를 더 무섭게 했다. 폭풍 전의 고요는 평화가 아니라 숨죽임이라는 걸, 나는 그때 몸으로 처음 알았다.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밧줄이 당겨지고 풀렸다. 돛이 조정됐다. 누군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잠갔다. 누군가는 물통을 옮겼다.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랐다. 내가 배 위에 있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배의 언어를 아직 배우지 못했다. 밧줄의 이름도, 돛의 방향도, 사람들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그때 엘리너가 내 손목을 잡았다.

"멍하니 있지 마. 네 할 일 있어."

"뭐, 뭐요?"

"살아. 그게 일."

"…그게 일이에요?"

"응."

엘리너는 내 손을 놓고 난간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선장에게 뭐라 외쳤고,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하늘이 찢어지듯 번쩍였다.

번개.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바람이 다시 태어났다. 방금까지 없던 바람이 아니라, '있던 바람이 갑자기 괴물이 된' 느낌이었다.

돛이 울부짖었다. 배가 크게 기울었다. 갑판 위의 모든 것이,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나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손이 난간을 찾았다.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바닷물이 갑판 위로 '쾅' 하고 넘어왔다.

차가웠다. 살이 아니라 뼈까지 때리는 물.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짠맛과, 쇠맛과, 공포가 한꺼번에.

"로빈!"

엘리너의 목소리가 폭풍을 뚫고 들렸다. 그건 신기할 정도로 분명했다. 마치 내 이름이 밧줄처럼 내 몸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엘리너가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미끄러지지 않았다. 사람이라기보다, 갑판에 박힌 못 같았다.

그녀는 내 팔을 낚아챘다.

"잡아! 손 놓지 마!"

"나, 나…"

나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냈다. 내 손이 떨렸고, 다리가 떨렸고, 마음이 떨렸다. 그런데 엘리너는 내 떨림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뛰어! 지금!"

"어디로—"

"지금은 질문하지 마!"

그녀는 나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비틀거리며 뛰었다. 바닷물이 다시 덮쳤다. 나무 판자가 젖어 미끄러웠다. 누군가 뒤에서 넘어졌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돛—!"이라고 외쳤다.

또 번개.

하늘이 흰색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흰색 속에서 나는 잠깐, 너무 많은 것을 봤다.

부서지는 돛대.

흩날리는 밧줄.

갑판 끝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사람의 그림자.

그리고—엘리너의 눈.

그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나를 더 무섭게 했다. 엘리너가 흔들리는 세상이라면, 나는 어디에 서야 하지?

"엘리너!"

내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더 강하게 내 손을 잡아당겼다.

"입 다물고 숨 쉬어!"

"숨이…!"

"그럼 더 쉬어!"

말이 안 되는데, 그녀가 말하면 말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켰다. 바닷물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숨을 들이켰다.

그때, 배가 한 번 더 크게 기울었다.

이번엔 기울었다기보다는—무너졌다.

발밑이 '쾅' 하고 꺼지는 느낌. 갑판이 아니라 세계가 갈라지는 느낌. 내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 그 다음은 바다.

바다가 내 몸을 때렸다.

나는 손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엘리너의 손은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내 유일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바다는 따뜻함을 싫어한다.

파도가 우리 사이를 가르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감각이 전해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더 꽉 잡았다. 하지만 물은 사람보다 강했다.

엘리너가 처음으로 내 얼굴을 봤다.

그 눈빛이, 말보다 빨랐다.

살아야 해.

그녀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뜻은 들렸다.

그 다음 순간—손이 떨어졌다.

"엘리너!"

내 목소리는 번개 소리에 삼켜졌다.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숨이 끊겼다. 눈을 뜨자 바다가 전부였다. 위도 아래도 없었다. 단지 회색과 검정과 흰 거품.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끝까지… 가.

그리고 어둠이 왔다.

다음에 눈을 뜬 건, 바다의 목구멍이 아니라 모래 위였다.

기침이 먼저 나왔다. 몸이 스스로 물을 토해냈다. 폐가 찢어질 듯 아팠고, 목은 불타는 것 같았다. 나는 네 발로 기어 모래를 움켜쥐었다.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잡았다. 뭔가를 잡지 않으면 다시 바다로 끌려갈 것 같아서.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나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맑았다.

너무 맑아서, 방금 전의 지옥이 꿈 같았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새들이 울었다. 파도는 조용히 해변을 핥았다.

나는 떨리는 숨을 삼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없었다.

엘리너도. 선원들도. 배도.

…아니.

배는 있었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 물결 위로 부서진 돛대의 끝이 삐죽 솟아 있었다. 마치 바다가 "봐, 여기 있어"라고 비웃듯이. 부서진 나무들이 파도에 떠밀려왔다가, 다시 끌려갔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풀려 다시 주저앉을 뻔했지만, 이를 악물었다.

나는 모래 위에서 주변을 훑었다.

숲이 있었다. 해변 바로 뒤로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그 나무들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해변 왼쪽 끝, 바위 절벽 아래—뭔가 부서진 나무 더미와 천 조각이 쌓여 있었다. 배의 잔해였다.

나는 가방을 확인했다.

기적적으로 어깨에 걸려 있었다. 끈이 한 군데 끊겼지만, 안의 것들은 살아 있었다. 바늘, 노트, 연필. 빵은 물에 불어 뭉개졌지만. 나침반—나침반은 멀쩡했다.

나는 나침반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바늘이 흔들리다가, 천천히 멈췄다.

북쪽.

그게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몰랐다. 이 섬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엘리너가 어디에 있는지도. 살아 있는지조차.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파도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때—파도 사이로, 부서진 배의 검은 그림자가 다시 떠올랐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떡하나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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